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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천천히 알아가기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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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 Mangel & Francisco J. Samaniego (1984) Abraham Wald's Work on Aircraft Survivability, Journal of the American Statistical Association, 79:386, 259-267, DOI: 10.1080/01621459.1984.10478038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분석센터 연구원들은 전투기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쟁에서 돌아온 전투기의 외상을 분석하였습니다. 당시 조사 결과 전투기 동체의 피탄 갯수는 평균적으로 엔진 1.11발, 동체 1.73발, 연료계 1.55발, 기타 1.80발로 분석되었습니다. 이같은 분석 결과에 따라 미군은 당연히 피탄 갯수가 많은 부위를 중심으로 내구성을 보강해 적군의 총격에 의한 전투기 피해를 줄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통계학자 아브라함 왈드(Abraham Wald)는 이같은 결론을 정면으로 반박하였습니다. 이 연구는 복귀에 성공한 전투기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결과이기에, 연구 결과를 있는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오히려 몸통 부분에 총격을 받아 큰 손상을 입은 전투기는 복귀하지 못하고 추락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실제로는 전투기가 그렇게 총탄을 많이 맞았음에도 무사히 복귀할 수 있었으므로, 피탄 갯수가 많게 조사된 부위에 대해서는 보강의 필요가 오히려 적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귀환한 비행기가 총탄을 맞지 않은 부분을 타격당한 전투기가 복귀하지 못했을 것이므로, 실질적으로 보강이 필요한 부분은 피탄 갯수가 가장 적다고 조사된 엔진 부위라는 것입니다.

Section of plane Bullet holes per square foot
Engine 1.11
Fuselage 1.73
Fuelsystem 1.55
Rest of the plane 1.80

다시 생각해보면 통계학자 아브라함 왈드의 주장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미 해군분석센터 연구원들의 판단 실수 또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사건 미 해군분석센터가 범한 오류가 바로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이며, 이는 곧 어떠한 문제에 대해 진단할 때, 이미 특정 선택 과정을 통해 걸러져나온 일부 데이터만으로 판단을 내려 잘못된 결론을 얻게 되는 논리적 실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생존자 편향은, 소수의 성공 사례를 가지고 인과 관계를 판단하는 경우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금융 시장에서 '전설'로 일컬어지는 일부 기업들의 운영 방침이 사회에 알려지면 이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운영 방침을 지향하는 수많은 기업들이 생겨나곤 하지만 실제로 '전설'이 된 일부 기업들은 그저 운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료의 경우에도 '내 지인이 이 약을 먹고 증상이 많이 좋아졌다더라' 혹은 '내 친구가 그 병원에서 진료받고 다 나았더라'와 같은 입소문이 지역 사회에 돌곤 합니다. 엄밀히 보았을 때 환자들이 호소하는 증상이 비슷할지라도 전혀 다른 진단이 나오기도 하고, 각기 다른 사람에 대한 의료인의 접근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도 사람들은 당장 자신의 증상이 눈앞에 보이니 이같은 판단의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생존자 편향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빌 게이츠(Bill Gates), 스티브 잡스(Steve Jobs),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의 사례를 근거로 들어 '대학을 중퇴하더라도 성공에 문제 없다'는 결론은 도출한다면, 이는 대학을 중퇴한 후 평균 수준 이하의 경제 상황에서 생활하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사례들(Silent Data)를 고려하지 못한 그릇된 결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다른 경우입니다. 유대인 학살(The Holocaust)과 관련해 누구나 떠올리는 수용소의 이름이 있습니다. 흔히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불리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Das Konzentrationslager Auschwitz-Birkenau)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수많은 수용소들 중 그나마 잔혹함이 덜했던 수용소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베우제츠(Belzec) 수용소, 소비보르(Sobibor) 수용소, 트레블링카(Treblinka) 수용소의 유대인은 한 명도 남김없이 학살당한 반면,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오히려 생존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그 잔혹성에 대한 증언이 남을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악명 높은 수용소로 알려지게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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