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끄적끄적

[in 한의대] 한의대 교육 과정을 살펴보자 (1)

반응형

국내에는 11개의 한의과대학과 1개의 한의학전문대학원, 도합 12개의 한의대가 있습니다. 한의대에 입학하면 한의예과·한의학과 교육 과정을 거친 후 국가고시를 치러 국가가 인정하는 의료인이 된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으나 한의대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우는지, 조금 딱딱하게는 어떤 교육 과정을 거쳐 의료인의 소양을 갖추게 되는지는 교육을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한의대에서 인체 해부를 하나요?"
"한의대에서 동양 철학을 얼마나 배우나요?"
"한의대 입학 전에 한자를 미리 공부해둬야 할까요?"
"한의대에서 배우는 화학·생물은 어느 정도 난이도인가요?"

입시 커뮤니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위와 같은 질문들은 한의대의 교육 과정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막연한 두려움과 호기심에서 우러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같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한의대의 교육 과정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전공필수 교과목을 살펴보기 전에

아시다시피 2년 간의 한의예과 과정은 앞으로의 한의학과 과정을 준비하는 워밍-업 단계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전공과목의 비중이 본과 과정 대비 현저히 낮습니다. 이 시기에 대부분 교양 과목을 같이 수강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과 과정 역시 유급의 위험이 도사린다는 점은 같기 때문에 언제나 조심할 필요는 있습니다.(관련글 : 유급 제도란?) 다행히도 이 시기에는 과락이 아니라면 평락의 위험성은 비교적 낮은 것이, 전체 평점에 교양 과목의 평점이 합산되기 때문입니다.

전국 11개 한의과대학 한의예과 교육 과정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의 학·석사통합과정은 학사과정(3년)과 한의무석사과정(4년)이 연계되어 운영되기 때문에 다른 11개 한의과대학의 교육 과정과 다소 차이를 보이므로,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6년 간의 교육 과정을 정리하기 위해 배제하였습니다. 아래는 현 시점에서 전국 11개 한의과대학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각 학교의 교육 과정을 통합한 표입니다. 대략적인 흐름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므로 세세한 부분까지 살펴볼 필요는 없습니다.

흐름을 살펴보기 위한 정리이므로, 교과목 이름이 다르더라도 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하나의 과목으로 묶었고, 이것이 중복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전대학교 예과 1학년 1학기 교육 과정에는 경전강독1과 일반한문1이 있는데, 이를 묶어 '일반한문' 과목을 2개 배운다는 의미로 일반한문 칸에 '대전'을 두 번 표시하였습니다.

전국 11개 한의과대학 한의예과 교육 과정

정말 다양한 교과목이 개설되어 운영되고 있는데, 제 마음대로 섹터를 나누어 따로 분류해보았습니다.

  • 기초 한의학 계열 : 한의학 개론·원론, 일반한문, 의학한문 및 의학 중국어
  • 생물 계열 : 기초의학, 일반생물학, 인체 생리학, 인체 해부학, 조직학, 발생학, 유전학, 비교의학, 면역학, 미생물학, 분자생물학
  • 화학 계열 : 일반화학, 생화학, 유기화학
  • 원전 계열 : 원전, 의학사, 각가학설, 동양철학 등
  • 본초학 계열 : 본초학, 약용식물학, 약용자원학, 천연물의약학, 한방식품학
  • 예방의학 계열 : 예방의학
  • 기타 : 의학 통계학, 의료 윤리학 등

먼저, 한의학 개론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그리고 다음은 많은 학생들이 걱정하는 각종 한문 과목들입니다. 이걸 보시면서 '이만큼 빡세게 한문을 배우니 입학 전에 미리 공부해야겠다'가 아니라, '어차피 이만큼 하면 싫어도 익숙해진다'고 생각하시는 편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어차피 입학 전에 미리 공부한다 하더라도 공인 자격증을 취득하는 정도겠지만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한자와는 차이가 있고, 일반한문 과목만을 미리 대비한다기엔 입학 전의 금쪽같은 시간이 너무 아까우니까요.

또한 위의 과목들과 더불어 의학용어를 익히고 인체 생리학의 기본이 되는 일반생물학을 같이 공부하게 됩니다. 이 과목들의 수준은 중등 교육 과정과 비슷하거나 아주 약간 심화되는 정도 난이도이므로 자연 계열로 수능을 넘긴 학생이라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교차 지원을 통해 한의대에 입학하는 인문 계열 학생이라면 약간은 긴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의 교육 과정이 계속해서 '쌓아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내용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사히 진급하더라도 계속해서 '무작정 암기만 하는' 나날들이 펼쳐지게 될 것이기 때문(제 경험입니다...)입니다. 보시다시피 이미 일반생물학은 예과 2학년의 인체 생리학과 인체 해부학 등의 과목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생리를 알아야 이후에 배울 병리학을 알 수 있고, 병리를 알아야 치료에 쓰이는 약물의 기전(약리학)을 공부할 수 있겠지요.

화학 계열 과목 또한 중등 교육 과정과 비슷한 난이도인데, 전공 특성상 비중은 생물 계열 과목 대비 훨씬 낮은 편입니다. 화학적인 매커니즘 또한 인체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경중을 따지는 것이 아니고 일단 배워나가는 입장에서는 습득해야하는 생물학적인 지식이 양적으로 더 많다는 의미입니다.

원전 계열 과목들 중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동양 철학' 과목입니다. 사실 저는 이 시기 이후로 동양 철학을 따로 공부한 적도 없고, 한의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다 유급 위험이 큰 과목도 아니었어서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던 기억만 있는 과목이긴 합니다. 졸업 후 임상 경험 3년을 채워가고 있지만 동양 철학의 무엇인가가 필요했던 적은 단언컨대 없습니다. 시험 기간 전에 장학금을 노리고 모든 과목을 빡세게 공부하는 모범생 학우한테 커피 한 잔 사며 꼭 외워야 하는 것만 알려달라고 하면 유급 걱정은 없습니다. 이미 근거중심의 현대한의학이 자리잡았지만, 세대 교체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경직된 대학 내 사회의 특성 때문에 남아있는 전통 한의학의 잔재같은 느낌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 교수가 강의하는 동양 철학 ▲ 내가 공부한 동양 철학

다음은 본초학 계열 과목들입니다. 본초학은 한약을 구성하는 개별 한약재를 익히는 과목이라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이후 처방을 구성하는 방제학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임상에서도 본초 단위의 가감(加減)이 수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쉽게 접할 수 있는 처방전을 놓고 봤을 때 처방을 구성하는 개별 약재가 본초, 처방 전체를 방제라 보시면 됩니다. 약용식물학·약용자원학 등은 본초를 보다 식물 자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과목입니다.

다음으로는 본격적인 한의학 교육에 해당하는 한의학과 과정 즉, 본과의 교육 과정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