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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한의대] 유급 제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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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의 마무리 단계에서, 한의예과 입학을 지망하는 많은 분들께서 궁금해하시는 제도가 있습니다. 바로 '유급' 제도입니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구하다보면 많은 한의대생이 유급 때문에 고생한다는 얘기들이 많지요. 학교마다 학칙이 다르기 때문에 유급 제도 역시 학교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인 핵심 내용이 있기 때문에 입학 전에 미리 알아두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꽤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의과대학의 유급 제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전국 한의과대학은 11개교, 한의학전문대학원은 1개원으로 전국에 총 12곳의 한의학 교육기관이 있습니다. 퉁쳐서 12개의 한의대가 있는 것이지요. 현실적으로 12개 한의대 학칙을 모두 정리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학칙이라는 것이 언제 개정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설령 모두 다 정리해드린다 해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직접 확인하는 편이 가장 확실하지요. 이번 글을 통해서는 한 가지 예시를 통해 유급 제도를 대략적으로 알아보고, 따로 확인해보아야 하는 점은 어떤 부분이 있다면 예시와 별개로 짚어드리겠습니다.

저는 제가 졸업한 대전대학교 기준으로 학칙을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대전대학교는 학교 홈페이지 → 대학소개 → 대학현황 → 대학규정을 통해 학칙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학칙과 학칙시행세칙의 유급 관련 규정을 살펴보겠습니다.


※ 학칙 제 4절 이수학점의 인정

제38조의3(유급 및 진급유예)
① 한의예과 및 한의학과 학생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학기유급이나 진급 유예한다.
1. 한의예과 및 한의학과 학생이 매학기에 수강 신청한 전공과목의 학점을 취득하지 못하였거나 매학기 평점평균이 2.0미만인 때에는 해당학기를 유급으로 한다.
2. 한의예과 2학년 및 한의학과 2학년은 학칙 제35조제2항에 의한 이수학점을 사정하여 소정의 과목을 이수하지 못하였을 때에는 소정의 과목을 이수할 때까지 진급을 유예한다.
③ 유급에 관한 세부사항은 따로 정한다.

※ 학칙시행세칙 제14장 유급

제73조(유급) 유급된 자가 유급 해당학기에 이수한 전 과목의 학점의 취득은 인정하지 아니한다

생각보다 규정이 간단하지요? 유급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평점 유급과락 유급이 그것입니다. 학칙을 읽어보면 각 경우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쉽게 말해 평점 유급은 전공과목 전과목의 평점이 2.0 미만인 경우에 해당하고, 과락 유급은 전공과목 중 한 과목이라도 F를 받게 되면 유급에 해당됩니다. 각 경우에 있어서 차이는 없고, 두 경우 모두 동일한 유급입니다. 이렇게 유급이 발생하는 경우 학칙시행세칙에 의거해 유급 해당학기에 이수한 전 과목의 학점이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다시말해, 등록금은 냈지만 학교를 다닌 적이 없는 것과 같게 된다는 것입니다. 해당 학기의 성적이 아예 삭제됩니다.

한의대별 유급 제도의 차이점과 궁금증

1. 학기별 유급 vs 학년별 유급

학교별로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대전대학교의 경우 학기의 성적을 기준으로 유급 여부를 가르지만, 일부 학교는 학년의 성적을 기준으로 유급 여부를 가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1학기를 무난히 넘기더라도 2학기에 전공 과목 하나에서 F가 나오게 되면 한 학년의 성적이 통째로 삭제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무난히 넘겼던 1학기도 다시 처음부터 이수하여야 합니다.

1학기를 마쳤는데 유급이 발생했다면, 2학기 수업을 먼저 듣고 이후에 1학기로 되돌아갈 수 있는지 여부도 학교마다 다릅니다. 무조건 해당 학년의 2학기를 쉬고 다음 해에 1학기부터 다시 수강하여야 하는 경우도 있고, 2학기를 먼저 수강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각 한의대의 학칙을 살펴보아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2. 유급이 반복되면 제적?

이 부분 역시 학교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유급이 수 회 반복되는 경우 제적 가능성이 있습니다. 각 학교마다 구체적인 학칙 내용을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대개 유급률이 치솟는 특정 학기가 있습니다. 특정 과목의 담당 교수가 피바람을 날리는 경우도 있고, 학업 부담이 큰 여러 과목이 한 학기에 몰려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체력적인 부담이 상당한 학기가 몰려있는 구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헬 구간'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유급이 제적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3. 구체적인 유급의 비율은

정확히 공개된 자료가 없습니다. 3D(동의, 대전, 대구)가 가장 유급률이 높다는 얘기가 있지만 정량적으로 비교된 바는 없습니다. 고려해야할 점은, 학기 유급에 비해 학년 유급이 겉보기에는 적어보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도적으로 과락이 전적으로 교수의 권한이라는 점은 대부분의 한의대에서 동일하기 때문에 각 학교 교수진의 분위기와 문화 또한 영향이 큽니다. (일부 교수는 '유급이 없으면 학생들이 공부를 안 한다'며 학기를 시작하면서 일정 수는 유급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시작하곤 합니다.)

4. 일부 한의대의 특이한 제도 혹은 관습

경희대의 가장 큰 특징은 과락 유급의 경우 해당 과목만 재이수하면 된다는 점입니다. 다른 한의대와 비교해 가장 합리적인 유급 제도라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한의대의 경우 다른 모든 과목에서 A+를 받더라도 단 한 과목에서 F를 받게 되면 모든 과목의 성적이 삭제되지만, 경희대학교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경우는 등록금에도 차이가 생기게 됩니다.

대전대의 경우 2년 단위로 성적이 인정되어야 다음 학기로 진급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예과 1학년 1학기에 유급이 발생하더라도 2학기를 수강한 후 예과 2학년으로 진급해 1, 2학기를 모두 수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 다음 다시 예과 1학년 1학기로 돌아가야겠지요.) 이를 흔히 '점프'라고들 부릅니다. 다만, 수강하지 않은 학기의 점프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유급이 발생한 경우에 한합니다.

이외에 '의무 유급'이나 '권고 유급'과 같은 몇 가지 독특한 관습이 도시괴담처럼 카더라로 전해지긴 하는데, 이건 공개적으로 말씀드릴만한 내용은 아니니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알아야할 것

한의대 생활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미 교육과정을 알아보셨겠지만, 한문·원전(原典) 등 일부 과목은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과 거의 접점을 가지지 않는 별개의 내용인 데다 실제 임상과의 괴리도 큽니다. 이는 학생의 입장에서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만듭니다. EBM(Evidence Based Medicine)의 관점에서 그저 Case 또는 Case Series로 취급되는 낮은 수준의 근거를 굳이 수 학기에 걸쳐 배워야 하는지, 또는 설령 전통 한의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더라도 현대 한의학에서 사실상 기각된 일부 이론을 굳이 배워야 하는지 고민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일부 교수는 사실상 현대 한의학의 흐름에서 본인이 설 자리가 점차 사라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유급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감을 찾기도 합니다. 애초에 중요한 과목이라면 굳이 유급이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알아서 열심히 공부할텐데, 그렇지가 않으니 유급이라는 제도로 학생들을 협박하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이지요.

또, 한의과대학에서 6년 안에 모든 커리큘럼을 마치고자 한다면 가급적 특수한 상황을 피해갈 필요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학교에 다닐 때 발생한 학부생과 교수진의 정치적 충돌 상황(투쟁)에서, 한 교수는 투쟁이 지속된다면 '불가피하게' 집단 유급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지만 뒤에서는 '유급 카드를 너무 일찍 꺼냈다'는 식의 얘기를 하다가 덜미가 잡히기도 했습니다. 유급 제도는 학업 외적인 영역에서까지 학부생에 일방적으로 불합리한 의도로 활용될 소지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이어 써보겠습니다. 학기 중에 희귀난치질환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시험 기간은 아니었지만, 아시다시피 어느 학기든 시험 기간에 국한되지 않고 끊임없이 시험이 이어집니다. 특히 유급이 다수 발생하는 과목의 시험이 예정된 상황에서 저는 충분한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하고 퇴원하여야만 했습니다. 치료 기간이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는데, 그나마 입원 기간에도 저는 시험 범위 요약본을 펴놓고 수업도 듣지 못한 부분을 억지로 암기해야만 했지요. 결국 커트라인을 간신히 넘기며 통과해 유급이 발생하지는 않았고, 약 1년 간 추가 치료를 받은 후 완치 판정을 받았으니 나름 해피 엔딩이긴 합니다. 하지만 학부를 졸업한 지금까지도 질환의 후유증이 남아있다보니, 차라리 유급을 감수하고라도 당시에 제대로 치료를 받았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 누구와도 멀리 있지 않은 '유급'

사실 유급 제도는 한의대에만 있는 제도는 아닙니다. 의료계열의 많은 학교에 존재하는 제도라서, 입학 전에 반드시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제도입니다. 각 의료 분야에도 수많은 세부 분야가 존재하는데, 학업에 온전히 집중한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전제했을 때라야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부분을 차치하고 국가고시를 통해 검증된 의료인만이 사회로 배출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굳이 유급 제도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현실은 현실입니다.

만일 한의대를 지망한다면 반드시 유급 제도를 알아두고, 입학 후에 선배를 통해 세부적인 이야기를 듣거나 본인이 직접 학칙을 찾아보며 혹시 생길지 모르는 불상사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두어야 비교적 순탄한 학부 생활이 가능할 것입니다. 불상사 없는 인생이 가장 좋겠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는 일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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