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대유행이 드디어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는 듯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고, 나도 일찍 접종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고민 없이 바로 접종받기로 했다. 뉴스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몇몇 후기글들에서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일종의 이상 반응들에 대해서 미리 찾아보았고, 접종 하루 전 날 미리 타이레놀 500mg을 세 통 사와 쟁여두었다.
03/10 AZ 백신 접종 당일
보건소 1층 로비에서 체온·혈압 측정을 마친 후 문진표를 작성하였다. 이동하기 전 백신 접종과 관련한 안내문을 받았는데, 안내문에는 내가 아스트로제네카 백신을 맞을 것이라고 큼지막하게 AZ라는 표시가 있었다. 나는 백신 종류와 상관 없이 접종을 받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예방접종실로 이동하였다.
예방접종실에서는 (문진표 작성 때 이미 체크한 내용이지만) 다시금 약물 알레르기가 있는지, 이전에 아나필락시스를 경험한 적이 있는지, 당일 컨디션이 유독 나쁘진 않은지 등을 체크하였다. 이 과정은 아주 간단하게 지나갔다. 오른손잡이라서 주사는 왼쪽 삼각근에 맞기로 했다.
09:25 접종을 완료하였고, 이후 주의사항과 생활 관련한 티칭이 적힌 안내문을 받았다. 아나필락시스 쇼크 시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하므로 최소 30분 간의 경과 관찰이 필요하였고, 이 시간 동안은 보건소 1층 로비에서 대기하였다. 접종 후 한 시간 정도는 삼각근 주변으로 먹먹한 느낌이 있었는데, 아주 경미한 정도라서 증상이 확실히 있는 것인지, 아니면 노시보 때문에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헷갈리는 정도였다.
12:00 여전히 별다른 이상 반응은 없었다. 경미하게 나타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내가 AZ 백신이 아니라, 생리식염수가 백신으로 둔갑했다는 시노팜 백신을 맞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예방접종 때문에 긴장을 해서인지 전날 평소보다 늦게 잠들었고, 그래서인지 슬슬 피곤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점심 식사 후엔 왠지 오늘따라 쓴 커피가 마시고 싶길래 쓰리샷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셨다.
18:00 아주 평범한 일상생활이 이어지는 와중에 가족 카톡방에 '20대 동생 코로나 백신 맞고 걷지도 못해…' 뉴스가 올라왔다. 아마 내가 오늘 예방접종을 받았다는 사실을 몰라서였겠지만, 괜시리 찝찝해졌다. 하지만 난 아무 증상이 없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고 평소처럼 생활하였다.
20:30 정말 놀랍게도 접종으로부터 12시간 정도가 지나자 약간의 오한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심한 정도는 아니고 방이 살짝 쌀쌀하게 느껴지는 정도였다. 불과 몇 주 전에도 몸살 감기를 앓았던 지라 오한은 아주 지긋지긋한데, 아무리 예상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막상 오한이 느껴지니 걱정보다는 짜증이 몰려왔다. 어차피 아플 거면 낮에 아프지.
21:00 미지근한 듯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일찍 잠들 채비를 마쳤다. 별다른 증상은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에 쟁여두었던 타이레놀을 1T 복용하였다. 가만히 누워서 넷플릭스를 틀어두었는데 양쪽 귀 뒤로 목을 타고 내려오는 경미한 근육통이 느껴졌다. 불편한 정도까지도 아니었고, 아무 느낌이 없지는 않은 정도였다. 2019년 1월 초에 앓았던 A형 독감 당시에도 이 부위부터 근육통이 생겨 상·중부 승모근 전반으로 확산되는 심한 근육통이 나타났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걱정보다는 짜증이 났다. 사실 접종 다음 날은 연차를 내고 편히 쉬는 게 낫다는 얘기를 워낙 많이 들었어서 이미 11일자로 연차를 내두었지만, 그래도 새벽에 아프고 싶진 않았다. 똑같이 아파도, 새벽에 아프면 뭔가 서러운 느낌이 든달까.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각 쯤 잠에 든 것 같다.
03/11 AZ 백신 접종 다음 날
01:30 낮에 마신 커피가 너무 진해서였는지, 잠에서 깨버렸다. 커피도 커피인데, 막상 연차를 써두었는데 일찍 잠들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한 몫 거든 것 같다. 마치 매주 토요일마다 꼭 밤을 새다시피 늦게까지 깨어있던 것과 같이. 여전히 뒷목의 경미한 근육통은 지속되고 있었다. 아주 가볍게 불편한 정도였는데, 비몽사몽하는 와중에도 내심 불안했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귀가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도 실제 증상이 있었다기보다는 노시보에 가까운 듯 했다. 슬슬 잠에서 깨어가는 느낌이라서 타이레놀을 1T 추가로 복용하였다.
02:00 적당히 누워있어봐도 잠이 오지 않길래 아예 깨기로 했다. 적당히 스트레칭을 하고, 잉여롭게 컴퓨터 앞에 앉아 커뮤니티 눈팅을 시작했다.
04:00 여전히 잠이 오지 않는데, 이건 커피 탓이 아니라 잠들지 않고 연차를 즐기고 싶어하는 내 무의식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후부로 약간의 건조감이 있었지만 아픈 것은 아니었고, 기침 같은 증상도 딱히 없었다.
06:00 슬슬 날이 밝아오는 시간이 되었다. 남들이 열심히 일할 때 꿀잠을 자야 연차의 맛이 산다. 슬슬 졸려오기도 하길래 다시금 잠들기로 했다. 이 때까지도 별다른 증상은 없고, 은은하게 남아있는 뒷목의 불편감 정도가 증상의 전부였다.
12:00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엔 연차를 써도 밖에 나돌아다니기가 찜찜하다. 누워서 잉여롭게 지내다가 일어나서 컴퓨터를 잡고 잉여롭게 지내다가를 반복했다. 주사를 맞았던 왼쪽 삼각근 중부로 슬슬 근육통이 생기기 시작했다. 보통 이렇게 늦게 나타나는 증상이 아닐텐데, 나는 꽤나 진행이 늦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17:00 왼쪽 팔을 움직이면 발현되는 삼각근 부위 통증이 지속되었다. 통증이 심해서 팔을 못 움직이는 정도는 결코 아니고, 움직일 때마다 '맞다, 내가 백신을 맞았었지' 하는 정도의 통증이었다. 이 쯤 되니 딱히 불안한 느낌도 없고, 타이레놀은 괜히 많이 쟁여뒀다 싶었다. 괜히 세 통이나 사둬서, 이걸 다 먹을 일이 있을까 싶다.
22:00 여전히 별다른 증상 없이, 동작 시에만 약간씩 느껴지는 왼쪽 삼각근의 통증이 지속되었다.
03/12 AZ 백신 접종 이틀 후
07:00 잠에서 깨어보니, 여전히 별다른 증상 없이 왼쪽 삼각근으로만 불편감이 약간 있는 정도가 지속되고 있다.
개인마다 편차야 있겠지만, 워낙에 부작용이나 이상 반응이라는 것이 발생하는 경우에만 말이 나오고, 발생하지 않는 경우는 조용히 지나가기 때문에 백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공포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워낙에 사람의 공포라는 감정은 미지의 영역에 대해서 훨씬 크게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물론 EBM을 근간으로 하는 의료는 언제나 확률 싸움이기 때문에, 단순히 내가 운이 아주 좋은 경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사례가 기자와 편집자의 입맛에 맞추어 가공되는 뉴스나 인터넷 게시물에 흔들리기보다는 차라리 연구자와 리뷰어의 피땀 섞인 연구를 신뢰하는 것이 낫다는 게 나의 결론이었다. 애초에 이상 반응이라는 것이 충분히 낮은 비율에서, 위험하지 않은 정도로 나타났기 때문에 승인이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고.
48시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까지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이상 굳이 내가 지금까지처럼 스스로를 관찰해서 증상을 기록할 필요는 없겠다. 이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