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당 김남수라는 이름은 굳이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뉴스를 통해 한 번 쯤 접해보았을 이름입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미디어 노출을 통해 유명세를 탄 이후 여러 논란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2012년, 구당 김남수가 스스로 주장한 침사 자격이 허위인 것으로 확인되었고*, 직접 시행하였다는 많은 의료행위들은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였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고 최근에는 대법원까지 가는 몇 차례의 법정 공방이 있었기에 이 내용을 정리해드리겠습니다.
구당 김남수와 함께 잘 알려진 집단은 '뜸사랑'으로, 1993년 '애구회(愛灸會)'라는 이름으로 발족된 이후 1997년 개칭되어 현재는 '구당뜸사랑협동조합'이라는 이름입니다. 이명(異名)은 '한국정통침구학회'인데 '전통침뜸을 계승 발전시키고 인술회복운동에 앞장선다'는, 본인들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2년 말, 한국정통침구학회는 시민사회단체 부설 평생교육 시설신고를 통해 ‘침·뜸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평생교육원 설립을 시도하였는데, 서울시 동부교육청은 의료법 상의 의료행위(내지는 유사의료행위)를 포함하는 교육 내용이 평생교육 대상으로 부적합하다며 평생교육시설 신고를 반려하였습니다. 이에 김남수는 반려 처분을 취소할 것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여 이 사건은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미리 짚습니다. 김남수가 개설한 일명 '한국정통침구학회'는 대한한의사협회(AKOM)와 일절 관련이 없으며, 대한한의학회(SKOM)의 인준 심사 및 평가를 거친 회원 학회는 대한한의학회 홈페이지(https://www.skoms.org/)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평생교육법 상 의료인력 양성 목적의 평생교육은 금지(고등교육법 제32조와 동법시행령 제28조 및 의료법, 의료기사등에 관한 법률, 자격기본법 등)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구당 김남수는 의료인 면허를 가지지 않은 무자격자였기 때문에 의료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침·뜸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교육’만을 목적으로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마련되어버렸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위 내용이 판결문에서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내용은 쟁점이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
재판의 결과부터 살펴보자면, 1·2심에서 재판부는 교육청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대법원에서는 해당 건에 대해 김남수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2016년에는 이와 관련한 사회적인 논란이 꽤 크게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남수의 주장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과연 하급심과 상고심의 결론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 쟁점 1. 신고제? 허가제? 그리고 '수리(受理)를 요하는 신고'?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사정을 들어, 원고가 2012. 12. 27. ‘침·뜸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교육’을 목적으로 제출한 ‘시민사회단체 부설 평생교육 시설신고’는 행정청의 실질적 심사를 거쳐 수리 여부가 결정되는 이른바 ‘수리를 요하는 신고’라고 판단하였다. (후략)
이전 포스트(의료기관 개설 시, 신고? 허가? – 신고제와 허가제의 차이)에서 신고제와 허가제의 차이를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판결문을 살펴보는 도중에 '수리를 요하는 신고'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의료법이 아닌 행정법에서 나오는 개념인지라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행정법에서 '신고'의 정의는 사인의 공법행위로서 신고란 사인이 공법적 효과의 발생을 목적으로 행정주체에 대하여 일정한 사실을 알리는 행위이며, 자기완결적 신고와 행위요건적 신고로 나뉩니다. 자기완결적 신고는 개념 상 수리를 요하지 않고, 신고 자체만으로 효과가 발생하는 반면, 행위요건적 신고(=수리를 요하는 신고)는 신고가 수리의 요건이 됩니다. 즉, 판결문의 표현 그대로 수리를 요하는 신고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자기완결적 신고는 단순한 신고서의 접수행위일 뿐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사인이 일정한 사실을 행정청에게 알렸다는 확인의 의미를 가질 뿐입니다. 행위요건적 신고는 행정주체가 실질 심사를 통해 수리 여부를 결정하게 되며, 수리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허가제가 아닌가?'라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허가 대상을 신고 대상으로 변경한 경우가 많고, 대부분 실질적 심사 요건을 남겨놓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때 신고의 수리는 허가와 같은 의미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다시말해 이번 사건의 쟁점은 평생교육법에 의거한 시민사회단체 부설 평생교육시설 신고가 '자기완결적 신고'를 가리키는지, '수리를 요하는 신고'(행위요건적 신고)를 가리키는지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라고 보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이번 신고가 '자기완결적 신고'에 해당한다면 신고를 위한 형식적인 조건을 갖춘 이상 담당 행정청은 수리를 거부할 수 없으므로 반려 처분이 적법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대법원은 해당 신고가 '자기완결적 신고'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구 평생교육법 및 시행령 등 규정들에 의하면, 시민사회단체 부설 평생교육시설을 설치·운영하고자 하는 자는 이를 신고할 의무가 있는데, 그 구체적 신고절차 등은 원격평생교육시설을 설치·운영하려는 자의 신고절차 등을 준용하고 있는바, 신고서 기재사항, 신고서에 첨부하는 운영규칙의 기재사항, 첨부하는 서류 등이 같고, 행정청은 위와 같은 신고가 있는 경우에 이를 검토하여 요건에 해당하면 신고증을 교부해야 하는 것도 같으며, 시민사회단체 부설 평생교육시설에서의 신고와 원격평생교육시설에서의 신고를 다르게 볼 특별한 규정도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신고는 시행령 제65조 제2항이 준용하고 있는 시행령 제49조 제1항, 제2항이 요구하는 신고서와 첨부서류를 모두 구비한 것으로 보이고, 피고(서울특별시동부교육지원청교육장)도 신고서의 기재사항이나 제출된 서류에 형식적 흠결이 있다는 것을 처분사유로 삼고 있지는 않으므로, 피고로서는 그 신고서의 기재사항에 흠결이 없고 소정의 서류가 구비된 이상 신고를 수리하여야 하고, 신고의 형식적 요건이 아닌 신고의 내용이 공익적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는 등의 실체적 사유를 들어서 신고의 수리를 거부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원심이 이 사건 신고는 실질적 심사를 거쳐 수리 여부가 결정된다고 판단하였는바, 이는 구 평생교육법 제36조 제3항의 신고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단을 그르친 것이다.
■ 쟁점2. 교육과정이 무면허 의료행위를 전제하는가?
두 번째 쟁점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보기 전에 짚고 넘어갈 점이 있습니다. 아래에서 다룰 '실체적 사유(교육과정이 무면허 의료행위를 전제하는지 여부)'는 판결의 근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상기한 쟁점 1에 대한 결론만으로 끝인데, 다만 1·2심에서 모두 다룬 내용이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였을 뿐입니다. 편의상 본 포스트에서는 아래 내용을 쟁점으로 다루겠으나, 실제 판결에서는 쟁점이 아닙니다.
신고된 평생교육시설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단순히 침·뜸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실습까지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침·뜸 시술은 원칙적으로 면허 또는 자격 있는 의료인에 의해 행하여져야 할 한방의료행위에 해당하는데, 무자격자에 의해 침·뜸 '실습'이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이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전제한다고 보아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교육과 의료행위를 분리하여 보아야 하고, 개연성만으로 위법성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침·뜸에 관한 이 사건 평생교육 과정에 임상교육이나 실습과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임상교육 등이 무면허 의료행위를 포함하지 않는 다른 대체수단에 의해 이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상 그 교육과정이 무면허 의료행위를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중략) 의학적 지식과 정보의 광범위한 전파 과정에서 일부 잘못된 지식의 무분별한 습득이나 어설픈 실천이 조장될 우려가 있을지 모르나, 이러한 이유만으로 특별한 법령상 근거도 없이 의학지식과 정보를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독점하도록 제한하고 일반인들에게는 그에 대한 접근이나 학습조차 금지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후략)
즉, 무자격자에 의해 의학지식 및 정보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더라도 실질적인 무면허 의료행위가 발생한 것이 아닌 이상 교육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설령 무면허 의료행위가 발생하더라도 교육 자체와는 별개로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일반인이 의학 지식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학위나 자격과 별개로 전공 서적을 직접 구입해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겠지요. 실제로 판결문에서도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증진시키기 위해 인체와 질병에 관한 지식을 학습할 기회를 갖는 것은 행복의 추구와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국민의 기본적 권리에 속'한다는 내용이 판시되어 있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그 실제 교육과정에서 무면허 의료행위나 미등록 학원설립·운영행위 등의 금지된 행위가 이루어진다면 그러한 행위에 대하여 형사상 처벌이나 별도의 행정적 규제를 하는 것은 모르되'라 판시하며 이번 판결이 무면허 의료행위 등에 대한 직접적인 판결을 내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번 판결은 의료법과 관계되는 내용이 아니라 행정법 상 시민사회단체 부설 평생교육 시설신고가 자기완결적 신고에 해당하므로 평생교육 시설신고 반려 처분은 위법하다는 내용입니다. 교육과정의 내용(실체적 사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된다는 말이 있지요. 시설신고가 완료된 후 서울시 동부교육청에서 우려한 바대로 해당 평생교육원의 여러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고, 무면허 의료행위와 더불어 자격기본법까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위 글은 법학 전공자가 제공하는 전문 지식이 아닙니다.
전문적인 법률 지식은 변호사에게 의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