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mel J, VonKorff M. Reducing Common Mental Disorder Prevalence in Populations. JAMA Psychiatry. Published online October 28, 2020. doi:10.1001/jamapsychiatry.2020.3443
학부에서 공부하던 시절, 한 교수님께서는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만약, 한 순간 모든 사람들이 건강해진다면 모든 의료인은 굶어죽을까?" 당황스러운 질문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의료인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일하는 동시에, 모든 사람이 건강하지는 않기를 바라야 하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수업을 마치면서도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하시며 끝까지 정답을 알려주시지 않았지만, 학기를 관통하는 수업 주제가 예방의학이었기 때문에 학부생들은 스스로 답을 찾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결국 누군가는 감염으로, 직업병으로, 이외에도 많은 이유들로 아파질 것이라는 사실을 사회의 모두가 알기 때문에 의료인은 예방의학으로 눈을 돌릴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의료: 진단과 치료, 그리고 예방과 관리
'의료'를 가까이 보면, 진단과 치료의 두 단계가 주가 됩니다. 이같은 관점에서 사람은 본인의 건강을 잃기 전까지 의료를 접할 필요가 없습니다. 넘어져 큰 상처가 난다거나, 심하게 삐거나, 독감에 걸렸을 때나 의료인을 찾게 되겠지요. 하지만 조금 멀리서 '의료'를 바라보면, '예방'과 '관리'라는 두 단계를 같이 볼 수 있습니다. 이같은 거대한 프로세스를 통틀어 '보건의료'라 부르고, 이와 관련된 수많은 직업군이 '보건의료인'이라 통칭됩니다.
통풍(gout)을 생각해봅시다. 많은 경우 환자가 통풍을 처음 접하는 시기는 첫 통풍 발작 시기입니다. 심한 통증을 느껴 의료인을 찾아가 통풍 진단을 받게 되면, 증상에 따른 치료를 받고 그 이후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게 되지요. 이후의 관리는 기간을 정해두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식이를 조절하고 운동을 병행하는 식이 되어야 하지요. 환자 당사자도, 주치의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초래되는 비용 역시 막대합니다. 그러나 만일 통풍 발작 이전에 충분한 예방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어떨까요? 환자가 고통을 겪을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고, 사회적인 비용 역시 훨씬 절감될 것입니다. 발작 이후 발생하는 생산성 저하 등을 고려한다면, 예방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지인 것입니다. (image from MayoClinic)
정신건강의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문제점
정신건강의학에서 다루는 주요 신경정신과적 질환(Common Mental Disorders)을 살펴보면 주요우울장애, 불안장애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같은 정신과적 질환은 대개 만성화되는 경향이 있을뿐 아니라 재발이 잦다는 측면에서 통풍과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입니다. 치료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데다가 완전히 '유전'과 같은 의미가 아닐 지라도 일종의 가족력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양한 신경정신과적 질환에 대해서도 수많은 RCT(Randomized Controlled Trials)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저자는 이같은 단기 연구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강하게 피력합니다. 단일 중재(intervention)의 단일 효과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연구방법인 RCT는 그 연구 방법의 한계로 특정 중재의 단기적인(길어봐야 1~2년 이내의) 효과만을 살펴볼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많은 연구 비용의 투자와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진단·치료·관리)의 증가가 이루어지더라도 질환의 유병률(prevalence)을 감소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지요. 이 주장은 신경정신과적 질환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크게 증가한 1980년대 이후에도 그 유병률이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까지 정신건강의학의 예방적 기능에 대한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근거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입니다. EBM(Evidence Based Medicine)에서는 양적으로 작은 단위의 근거가 모여 상대적으로 큰 단위의 근거가 되는 과정을 반복하여 거대한 단위에서의 근거를 확보하는데, 질환에 대한 예방의학적 관점의 연구는 이같은 사이클을 만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구수에 기반한 대량의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과 같이 정신건강의학의 포커스를 예방 단계로 옮기고자 한다면 정부 지원과 같은 거대한 자본이 개입하여야만 합니다. (image from EUPATI)
'흡연 예방 및 금연 정책'의 근거는 RCT가 아니었다
흡연 예방과 금연을 위한 사회적 변화는 근거를 마냥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직간접 흡연의 영향에 대한 역학 연구 이후 공공 정책의 변화를 통해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나타났고, 이는 개별적인 의료인의 개입보다 훨씬 경제적·효율적(cost-effective)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저자는 정신건강의학의 연구가 변화할 필요가 있고, 이는 지역사회중심의 예방적 기능을 갖춘 정책과 제도를 목표로 해야한다고 역설합니다. 예를 들어 임신 중 또는 출산 후의 우울증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산모를 심리적으로 지지해주고 효과적인 육아와 가족적 유대감 형성을 돕는 프로그램이라든지, 술·담배·본드 등 물질의 오남용을 줄일 수 있는 프로그램, 청소년기 사회정서적으로 건강한 정서를 가지도록 돕는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같은 제도와 정책은 질환에 대한 다차원적이고 구조적으로 통일성을 가지는 동시에 지속적인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본질적인 관점의 변화를 위해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요소를 특히 신경써야 합니다.
- 가정, 학교, 회사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잘 흡수될 수 있어 제도화로 이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적절한 재정 수급 또한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의 연구를 계획하여야 합니다. 변화라는 틀을 자세히 살펴보자면 정책·제도적인 변화와, 사회·문화적인 변화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양쪽 모두에서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 사회 구성원들이 어릴 때부터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재발과 만성화가 문제가 되는 많은 정신과적 질환은 소아청소년기부터 전조(precursor)를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잠시 느꼈던 우울감에 악순환이 반복되어 성인기 주요우울장애로 이어지는 것과 같은 고리를 최대한 일찍 끊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 최대한 연구 대상을 명확히 하고 보편화 가능하도록 설계하여 그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도출해낼 필요가 있습니다.
진단과 치료를 넘어 예방과 관리까지
현재 정신건강의학의 한계를 넘어 예방·관리에 대한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비로소 사회적 비용 투자가 유병률의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보다 큰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큰 규모의 인구 집단에 대한 역학 연구를 통해 정신건강의학에서의 예방·관리 단계 투자가 비용 대비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image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