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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이 보는 의료/판례로 보는 LAW-HANI

직접 진찰 없이 처방전 교부, 왜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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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처방전 대리 교부가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사례를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의사가 간호조무사에게 전화로 연락해 기존에 입력된 처방을 그대로 재처방할 것을 지시하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지요. '의사가 환자를 전화로라도 진찰한 것이 사실인가?'에 대한 답은 판시되지 않았습니다. 3심은 사실 관계를 심리하지 않기 때문에 법률심의 내용만 파기환송한 건이기 때문입니다.

1심과 2심에서는 의사가 전화 진찰했다는 증거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내용이 있었기에, 만일 이에 대해 제대로 행정 처분이 이루어졌다면 법원에서 정당한 행정 처분이라고 판단할지가 궁금한 대목이 됩니다. 이같은 사례 또한 3심까지 진행된 판결문이 있어 가져와보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명확히 짚고 넘어가보겠습니다.

제17조(진단서 등) ①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檢案)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아니면 진단서ㆍ검안서ㆍ증명서를 작성하여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한다. (후략) <개정 2009. 1. 30., 2016. 5. 29., 2019. 8. 27.>


구 의료법 제17조 제1항 본문은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을 작성하여 환자에게 교부하거나 발송(전자처방전에 한한다)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환자를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 등을 발행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은 처방전 등은 의사가 진단한 결과에 관한 판단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사람의 건강상태를 증명하고 민·형사책임을 판단하는 증거가 되는 등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그 정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직접 진찰한 의사만이 이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대법원 1996. 6. 28. 선고 96도1013 판결 등 참조).

대법원&nbsp;2017.&nbsp;12.&nbsp;22.&nbsp;선고&nbsp;2014도12608&nbsp;판결&nbsp;[의료법위반]&nbsp;[공2018상,366]

이 사건 피고인은 전주시에서 과(의료기관)를 운영하던 의사 A입니다. 의사 A는 2012년부터 ○○교도소와 정기적 진료계약을 체결하고, 그 진료방법으로 수용자가 교도소 외부로 나가 △△과에서 이루어지는 ‘원내 진료’와 교도소 내 의료과 의무관실에서 이루어지는 ‘출장 진료’를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피고인은 ○○교도소 내 정신질환 수용자들에 대하여 직접 의약품을 조제하여 교부하여 왔는데, 일부 수용자들(총 25명)에 대하여는 직접 진찰하지 않고 교도관들이 일부 수용자를 대신하여 직접 피고인의 병원에 찾아오면 종전의 처방전이나 진료기록만을 보고 의약품을 조제하여 이를 교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의약품이 ○○교도소에 반입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피고인 의사 A에 의하여 처방, 조제된 의약품이라는 점을 밝히는 한편, 일부 수용자들에게 복약지도를 하기 위하여 교도관들에게 ‘환자보관용’ 처방전 1부씩을 교부하였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처방전이란 의약분업을 전제로 ‘환자에 대한 의약품 투여 필요성을 인정한 의사가 약사로 하여금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도록 환자에게 작성, 교부하는 서류’가 아닐까요? 피고인 의사 A는 *의약분업의 예외에 해당하고, 이 사건에서 교부한 서류는 자신이 처방·조제한 의약품임을 밝히는 증명서에 불과합니다. 교도관들에게 교부한 처방전 또한 약사에게 전달될 처방전이 아닌, '환자보관용' 처방전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처방전'이 맞는지가 애매모호한 상황인 것이지요. 다음의 법문을 살펴보며 깊게 고민해보시죠.

제23조(의약품 조제) ①약사 및 한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으며, 약사 및 한약사는 각각 면허 범위에서 의약품을 조제하여야 한다. 다만, 약학을 전공하는 대학의 학생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범위에서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다.  <개정 2008. 2. 29., 2010. 1. 18.>

④제1항에도 불구하고 의사 또는 치과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자신이 직접 조제할 수 있다. <개정 …, 2018. 3. 27.>

3. 응급환자 및 조현병(調絃病) 또는 조울증 등으로 자신 또는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하여 조제하는 경우

10. …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및 「군에서의 형의 집행 및 군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른 교정시설 … 에 수용 중인 자에 대하여 조제하는 경우

☞ 의사 A 측 주장

위의 의문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과연 의사 A가 교부한 서류가 '처방전'이 맞느냐는 것입니다. 관련 법령을 들어 조목조목 주장을 펼친 것이 인상적이니 한 번 같이 읽어보시죠.

  •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 등을 작성하여 환자에게 교부하거나 발송하지 못하고(의료법 제17조 제1항), 의사 등은 환자에게 의약품을 투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면 약사법에 따라 자신이 직접 의약품을 제조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환자에게 처방전을 작성하여 환자에게 내주어야 하며(의료법 제18조 제1항), 약사는 원칙적으로 처방전 없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다(약사법 제23조 제3항).
  • 한편, 의료법 시행규칙 제12조는 ‘처방전’에 관하여 일정한 기재사항을 요구하는 이외에 의사 등으로 하여금 서명하거나 도장을 찍도록 규정하면서(제1항), 약사법 제23조 제4항에 따라 의사 등이 직접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음에도 환자에게 처방전을 발급하려는 경우에도 위와 같은 기재사항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제4항).

▷ 따라서 의료법, 의료법 시행규칙, 약사법의 관련 규정들을 종합하면, 의료법 제17조 제1항이 규정한 ‘처방전’은, 의약분업을 전제로 ‘환자에 대한 의약품 투여 필요성을 인정한 의사가 약사로 하여금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도록 환자에게 작성, 교부하는 서류’로 해석해야 하고, 약사법 제23조 제4항에 따라 의사가 직접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는 예외사유에 해당하여 의사가 직접 이를 조제하는 경우에는 위와 같은 의미의 ‘처방전’의 개념을 상정하기 어렵다.

법원 판단

창원지방법원에서 이뤄진 2심 판결에서는 해당 서류가 의료법 제17조에서 정한 '증명서'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교부되는 처방전과 다르지 않다는 해석입니다. 재판부는 다음 두 가지 이유를 들었는데, 제 생각엔 두 번째 이유가 판단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1. 1심에서 수용자 B는 “처방전은 약에 대한 정보제공용인가요. 아니면 이 약이 의사의 처방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인가요.”라는 질문에, “두 가지 다입니다. 의사의 처방전 없이 약이 처방될 수 없습니다.”라고 진술하였습니다.
  2. 법무부 예규인 수용자 의약품 관리규정 제21조 제1항에 의하면 “수용자 가족으로부터 의약품의 차입신청이 있을 때에는 조제 병원이 발급한 진단서 및 처방전을 제출토록 하고 의무관, 약제관 또는 전문가의 약품감정을 받은 후 극히 필요한 경우에 허가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어 의약품이 교도소에 반입되기 위해서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조제된 의약품임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대법원은 의사 A측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는데, 내용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의사가 자신이 직접 처방⋅조제한 의 약품임을 나타내는 내용과 함께 ‘환자보관용’임을 표기한 처방전 형식의 문서를 작성한 경우 위 문서는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한 의약품임을 증명하는 문서로서 구 의료법 제17조 제1항에서 정한 ‘증명서’에 해당한다. 이러한 증명서는 약사로 하여금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도록 하는 처방전과는 구별된다.

의사 등이 직접 진찰 의무를 위반하여 증명서를 작성하여 누구에게든 이를 교부하면 구 의료법 제17조 제1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증명서의 사회적 기능이 훼손되므로, 증명서가 반드시 진찰 대상자인 환자에게 교부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의사 A가 교부한 서류가 처방전이 아니라고? 맞아, 처방전이 아니지. 근데 의료법 제17조에서 다루는 것은 '증명서'이지, '처방전'에 국한되지 않아. 따라서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 입니다.


쓰다보니, 제가 이 판결문을 가져온 것은 '처방전'과 '증명서'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함이 아니었지요?
의사 A가 '직접 진찰 없이' 의약품을 조제·교부한 것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 의료법 제17조 제1항 본문은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이하 ‘의사 등’이라 한다)가 아니면 진단서⋅검안서⋅증명서 또는 처방전을 작성하여 환자…에게 교부하거나 발송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제89조는 제17조 제1항을 위반한 자를 처벌하고 있다.
  • 이는 진단서⋅검안서⋅증명서 또는 처방전이 의사 등이 환자를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결과를 바탕으로 의료인으로서의 판단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사람의 건강상태 등을 증명하고 민⋅형사책임을 판단하는 증거가 되는 등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그 정확성과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직접 진찰⋅검안한 의사 등만이 이를 작성⋅교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대법원 1996. 6. 28. 선고 96도1013 판결 등 참조).
  • 따라서 의사 등이 구 의료법 제17조 제1항에 따라 직접 진찰하여야 할 환자를 진찰하지 않은 채 그 환자를 대상자로 표시하여 진단서⋅증명서 또는 처방전을 작성⋅교부하였다면 구 의료법 제17조 제1항을 위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 피고인 의사 A는 수용자 25명(이하 ‘이 사건 수용자들’이라 한다)에 대해서는 직접 진찰하지 않고, 교도관들이 수용자를 대신하여 피고인의 병원에 찾아오면 종전의 처방전이나 진료기록만 보고 총 42회에 걸쳐 이 사건 의약품을 조제⋅교부하였다. 이 사건 수용자들은 피고인이 이전에 만나 보거나 이들의 상태를 직접 확인해 본 적이 없는 초진 환자들이고, 증상 등에 비추어 거동이 불가능하여 피고인의 병원을 방문할 수 없었다거나 피고인이 교도소 의무관실로 출장 진료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은 없다.

또한, 창원지방법원에서 이뤄진 2심에서는 재판부가 의료법 제17조 1항의 취지와 향정신성의약품에 대해 보다 자세히 언급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의료인이라면 모두 참고해야하는 교과서적인 내용이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 의료법 제17조 제1항은 의사가 환자를 스스로 진찰한 바가 없이 진료기록만을 보거나 진찰내용을 전해 듣기만 하는 경우에 그 환자에 대한 처방전 등을 발급하지 못하도록 하여 진료행위 없는 약물의 오,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다.
  • 향정신성의약품의 경우 식약청 고시 및 보건복지부 고시 등으로 4주 이내로 처방일수를 제한하고 있는 등 오남용을 막기 위하여 더욱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는데, 이 사건과 같이 마약사범 등의 수용자들에게 대면진료 없이 향정신성의약품들이 무분별하게 교부되는 것은 엄격하게 규제되어야 한다.

즉, 의사 A와 같이 직접 진찰 없이 의약품을 조제·교부하거나 증명서를 교부하는 행위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1심 판결문이 공개되지 않아 2심과 3심 판결문을 종합하여 전체적인 맥락을 전달해드리는 선에서 내용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의료인이 환자를 진찰하는 방법은 직접 진찰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일 것입니다. 환자가 인지하는 주관적인 증상들뿐 아니라 의사가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알 수 있는 다양한 정보가 있고, 환자가 본인의 증상을 착각하거나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단순한 하지 저림 증상만 하더라도 오래 앉아있다가 일어났을 때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저림 증상부터 중추신경계 이상으로 발생하는 증상까지 정말 다양한 양상이 있고, 이를 감별하기 위해 다양한 이학적 검사 내지는 혈액 검사, 영상 검사가 필요합니다.

간혹 인터넷 커뮤니티 또는 네이버 지식iN 등에 올라오는 질문글을 보면 몇 가지 증상을 주고 진단명을 묻는 글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글을 쓸 여유가 된다면 가급적 가까운 의료기관을 통해 의학적 지식을 검증받은 의료인을 통해 진단받는 편이 훨씬 빠르고 합리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드리며 이번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위 글은 법학 전공자가 제공하는 전문 지식이 아닙니다.
전문적인 법률 지식은 변호사에게 의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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