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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이 보는 의료/판례로 보는 LAW-HANI

간호조무사의 물사마귀 제거 시술, 의료법 위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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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의료법에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의료행위'를, 판례를 통해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관련 포스트 : 의료인도 모르는 ‘의료행위’) 결론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의료행위'라는 개념에는 의료인이 하여야 하는 행위, 질병의 예방· 치료행위, 보건위생상 위해를 가하는 행위가 포함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우리가 의료기관에 방문해 일종의 처치를 받는 과정에서 수많은 의료행위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깁니다. 법 조문과 판결문에서는 그렇다고 하는데, 막상 내가 직접 의료기관에 방문해 이런저런 치료를 받다보면 담당 의사·치과의사·한의사가 직접 입회하지 않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의료행위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주사제를 처방받는 경우에도 의사가 직접 주사제를 처방하긴 하지만, 막상 처치실에 가보면 의사가 있는 것은 아니고, 간호사가 주사 처치를 담당합니다. 그리고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간호조무사가 주사를 처치하기도 합니다. 혹시 의료법 위반이 아닐까요? 결론만 먼저 말씀드리자면,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이 사법부의 판단입니다.

대법원 2019. 8. 14. 선고 2019도7082 판결 [의료법위반]

만 3세 아동 A 씨는 2016년 6월 4일, 왼쪽 다리 부위 피부에 밥알만한 군살이 돋는 증상을 보여 한 의원에 방문하였고, 의사 B 씨는 이를 알레르기성 접촉성 피부염 증상으로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일 A 씨는 다시 같은 증상으로 같은 의원에 방문해 B 씨에게 진료를 받았는데, B 씨는 위 두 차례의 진료 내용을 바탕으로 해당 증상을 전염성 연속종(MC, Molluscum contagiosum)으로 진단하였습니다.

(image from Mayo Clinic, Molluscum contagiosum)

전염성 연속종은 성별과 무관하게 2~5세 유아에게 호발[각주:1]하며, 영국에서 이뤄진 단면 조사 연구(Cross-sectional surveys) 메타 분석(Meta-analysis) 결과에 따르면, 약 8.3%의 유병률[각주:2]을 보이는 흔한 질환입니다.

의사 B는 환자 A 및 질환의 상태 등을 고려할 때, 큐렛(Curette)을 사용한 제거 시술만으로도 해당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간호조무사 C에게 이 사건 시술을 지시하였습니다. 이 시술은 일반적으로 두 손가락으로 해당 부위를 벌려 팽창되었을 때 큐렛을 이용하여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한 개의 전염성 연속종을 제거하는 데 5초 이내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 과정은 매우 간단해보이지만, 질환의 이름 그대로 해당 질환은 전염성이 특징인 데다가, 엄밀히 시술의 보건위생상 위해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술기인 것입니다. 간호조무사 C가 직접 시술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의사 B는 이 현장에 직접 입회하지 않았습니다.

Robbins Instruments Disposable Dermal Curettes

의료법 제8장 보칙 제80조(간호조무사)
② 간호조무사는 제27조에도 불구하고 간호보조 업무에 종사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이 법을 적용할 때 간호사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며, “면허”는 “자격”으로, “면허증”은 “자격증”으로 한다.
③ 간호조무사의 자격시험ㆍ자격인정과 그 업무 한계 등에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
의료법 제2장 의료인 제3절 의료행위의 제한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①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범위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후략)

한편, 살펴보아야 할 다른 내용이 있습니다.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의 진료 보조행위에 대한 법령이 그것입니다. 구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법 제27조에도 불구하고 간호조무사로 하여금 간호보조 업무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되, 그 업무 한계 등에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하였습니다.

간호조무사 및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규칙 제2조(간호조무사 등의 업무 한계)
① 간호조무사는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수행한다.
 1. 간호보조 업무   2. 진료보조 업무

관련 규칙인 구 '간호조무사 및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규칙'을 살펴보면, 간호조무사는 간호사가 할 수 있는 간호업무를 보조하거나 진료보조 업무를 담당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개정 의료법 제8장 보칙 제80조의2(간호조무사 업무)
② (생략) 간호조무사는 제3조 제2항에 따른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하여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환자의 요양을 위한 간호 및 진료의 보조를 수행할 수 있다.
③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구체적인 업무의 범위와 한계에 대하여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

또한 개정 의료법에서는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해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 아래에서 간호조무사가 환자의 요양을 위한 간호 및 진료의 보조를 수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

위 내용을 종합해볼 때, 의사는 비의료인인 간호조무사에게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 진료의 보조행위를 하도록 지시·위임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쟁점은, '이 사건 행위가 의료행위인지 여부'가 아니라, '이 사건 의료행위가 과연 위임 가능한 제한된 범위 내에 있는지' 여부라고 해석하는 쪽이 보다 합리적인 판단이 되겠습니다. 또한, 이같은 문제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해당 술기 자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생깁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제주지방법원 항소부는 '전염성 연속종의 치료에 있어서는, 관련 질환이 전염성 연속종에 해당하는 지에 대한 의학적 진단과 함께, 감염위험성 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적절한 치료방법의 선택 및 치료시기의 결정이 중요하다'며, 위 큐렛을 이용한 시술에 대해 '의학적 관점에서의 재량적 판단이나 전문적 기술을 요하지 않는 비교적 단순한 행위로 평가'하였습니다. '큐렛을 사용한 전염성 연속종 제거 시술은 비교적 안전하여 피부표면의 양성병변 치료에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다른 방법에 비해 비교적 효과적이고 안전한 시술로 보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전염성 연속종의 진단 및 치료 방법의 선택은 의사의 역할로 보는 것이 맞고, 구체적인 시술 자체는 '진료 보조행위로 위임 가능한, 제한된 범위 내의 시술'로 본 것입니다.

관련해 살펴볼 또다른 판례로는 대법원 2003. 8. 19. 선고 2001도3667 판결이 있습니다. 판결 요지만 간단히 살펴보자면, 의사가 자신의 처방에 따른 간호사의 정맥주사(Side Injection 방식) 현장에 반드시 입회하여 주사행위를 직접 감독할 업무상 주의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내용입니다.

큐렛을 이용한 전염성 연속종 제거 시술이 엄밀히 보건위생상 위해 가능성이 있는 의료행위라는 사실은 맞지만, 과연 이 행위가 침습적인 행위인 정맥주사보다 큰 위험성을 가지는지 비교해본다면, 당연하게도 정맥주사의 위험성이 훨씬 더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의사가 정맥주사 현장에 반드시 입회해 해당 행위를 직접 감독할 업무상 주의 의무가 없다고 한다면, 이 사건 의료행위에는 당연히 의사가 직접 입회해 해당 현장을 감독할 주의 의무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의료기관 내의 인력은 의사·치과의사·한의사가 전부가 아닙니다. 간호사 또한 국가가 인정하는 의료인의 범주에 속하며,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해서는 시·도지사의 자격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의사·치과의사·한의사 3개 직역이 진단과 치료 전 과정을 주도하는 역할을 담당하나, 많은 경우에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와 긴밀히 협조하여 보다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가 만들어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일부 의료행위를 지시 또는 위임하는 프로세스는 업무 효율을 상당히 끌어올릴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물론 보건위생상 위해 가능성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충분한 안전성이 확보되는 상황이라면 보다 높은 효율의 진료를 통해 더욱 많은 환자가 쾌적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위 글은 법학 전공자가 제공하는 전문 지식이 아닙니다.
전문적인 법률 지식은 변호사에게 의뢰하시기 바랍니다.


  1. Rogers M, Barnetson RSC. Diseases of the skin. In: Campbell AGM, McIntosh N, et al. editor(s). Forfar and Arneil’s Textbook of Pediatrics. 5th Edition. New York: Churchill Livingstone, 1998:1633–5. [본문으로]
  2. Olsen JR, Gallacher J, Piguet V, Francis NA. Epidemiology of molluscum contagiosum in children: a systematic review. Fam Pract. 2014 Apr;31(2):130-6. doi: 10.1093/fampra/cmt075. Epub 2013 Dec 2. PMID: 2429746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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