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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이 보는 의료

의료인도 모르는 ‘의료행위’ – 판사만 안다는 게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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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2017년 08월 05일
www.talktalkhani.net/20170805-467/

의료법 제 27조에 따르면 ‘의료행위’ 는 오직 의료인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의료인 역시 면허 범위 외의 의료행위를 행할 수 없습니다. 의료행위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근본인 사람의 신체와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방법 또는 무면허 의료행위자에 의한 약간의 부작용도 사람의 신체와 생명에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헌재 2005. 10. 27. 2003헌가3; 헌재 2014. 3. 27. 2012헌바293) 흔히 병원에서 처방 받는 감기약 속 항생제만 해도 발열, 빈혈 등 비교적 가벼운 증상부터 신경학적 증상까지 다양한 부작용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에 전문 지식을 가진 의사로 그 처방 주체가 한정되어있는 것입니다.

‘의료행위’의 의료법 상 정의는?

그런데 궁금증이 생깁니다. 의료법을 아무리 읽어봐도, ‘의료행위’가 정의되지 않았거든요. 의료행위를 다루는 법이 ‘의료행위’를 정의하지도 않고 어떻게 시행될 수 있을까요? 의료법 위반으로 인한 처벌은 헌법에서 말하는 “법 없이는 죄 없다”는 원칙 즉,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와 상충되는 요소가 아닐까요? 이번에는 다소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지만, 의료법과 관련한 많은 판례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의료행위’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알아보겠습니다.

2017헌마535

청구인 A는 건강식품판매점을 찾은 환자들을 문진한 후, 2만원 가량을 대가로 교부받고 환자들의 전신에 침을 놓아 한방의료행위를 함으로써, 한의사가 아님에도 영리를 목적으로 한방의료행위를 업으로 하였다는 혐의(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위반)로 기소되었습니다. 청구인 A 역시 ‘의료행위’가 의료법에 정확히 규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의료법에 의료행위에 관한 정의규정을 제정하지 않은 입법부작위(立法不作爲 : 입법자가 입법의무가 있음에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불완전하게 이행하는 것)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는데요,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국회가 의료법에 의료행위에 관한 정의규정을 제정해야 할 입법의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음을 들어 해당 청구를 각하하였습니다. 쉽게 풀자면, 헌법재판소에서 “우리가 맡은 일이 아니니 다른 곳에 얘기해보세요”라고 얘기한 것입니다.

청구인A의 입장에서는, 위 헌법재판소 판결이 너무나 무책임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위와 같은 주장에 대해 이미 답변한 적이 있습니다. 2008헌가19 등 6개 헌법소원에 대한 판례가 그것입니다. ‘의료법의 입법목적, 의료인의 사명에 관한 의료법상의 여러 규정, 의료행위의 개념에 관한 대법원판례, 한방의료행위에 관련된 법령의 변천과정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조항들 중 “의료행위” 및 “한방의료행위”의 개념은 건전한 일반상식을 가진 자에 의하여 일의적으로 파악되기 어렵다거나 법관에 의한 적용단계에서 다의적으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즉, 일반인의 상식(사회상규)에서 이해되는 의료행위가 의료법에서 말하는 ‘의료행위’ 자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루어진 입법적인 노력은?

물론, ‘의료행위’를 정의하여 위와 같은 논란을 해결하고자 하는 입법적인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2007년 의료법 개정 때에는 ‘의료행위’를 명확히 규정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모든 의료인(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에 공통되는 ‘의료행위’를 일률적으로 정의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의료 기술의 발전이 시시각각 이루어지며 개별적인 의료행위의 양상이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현실적으로 의료행위의 개념이 사법부의 해석에 의존될 수밖에 없어 결국 의료행위를 정의하는 조항은 신설되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의료행위’의 개념은 사법부의 해석에 의존되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사법부는 ‘의료행위’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요? 크게 보면 의료인이 하여야 하는 행위, 질병의 예방· 치료행위, 보건위생상 위해를 가하는 행위가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법부의 입장은 의료행위를 아주 넓은 범위에서 해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는 의료면허제도를 두고 있는 의료법의 입법취지를 고려하여 국민 건강권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하는 입장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제가 위의 내용을 ‘장연화, 면허외 의료행위와 관련한 의료인의 형사법적 책임’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으나 간결하게 서술하기 위해 이해에 필요한 많은 판례를 생략하였습니다. 위 글만으로 애매모호하게 생각될 수 있는 부분은 위 논문을 직접 참고하세요. 요지는, 입법부와 사법부 모두 국민 건강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의료인에게 주어지는 면허의 배타적인 속성을 포괄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행복추구권(소비자의 의료 선택권 등)과 면허 제도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대부분 면허 제도의 배타성을 폭넓게 인정해주는 사법부 판결의 흐름과 일맥상통하는 일관된 입장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위 글은 법학 전공자가 제공하는 전문 지식이 아닙니다.
전문적인 법률 지식은 변호사에게 의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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