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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이 보는 의료

조제 vs 제조, 도대체 무슨 차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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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방에서 의사와 약사의 역할이 의약분업을 통해 명확히 구분되는 반면, 한방에서는 한의사가 조제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료법뿐만 아니라 약사법이 쟁점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사 국가고시에서는 약사법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관련한 사전 정보가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가장 헷갈리기 쉬운 부분이 바로 '조제'와 '제조'의 구분입니다. 대법원에서 해석한 '조제'와 '제조'의 의미에 대해 명확히 알아보겠습니다.

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7도16593 판결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위반(부정의약품제조등), 약사법위반]

먼저 약사법을 살펴보면, 총칙 제2조(정의)에서 '조제'의 의미를 명확히 다루고 있습니다. '조제'란, '일정한 처방에 따라서 두 가지 이상의 의약품을 배합하거나 한 가지 의약품을 그대로 일정한 분량으로 나누어서 특정한 용법에 따라 특정인의 특정된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약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한의사의 '조제'권한, 법적 근거는

약사법 제2절 조제
제23조(의약품 조제)
① 약사 및 한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으며, 약사 및 한약사는 각각 면허 범위에서 의약품을 조제하여야 한다.
② 약사 또는 한약사가 의약품을 조제할 때에는 약국 또는 의료기관의 조제실에서 하여야 한다. 다만,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약사법 제23조에 의하면 오직 약사와 한약사만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의원·한방병원에서 조제 시설을 갖추고 직접 한약을 탕전하여 환자들에게 교부하고 있는데 이는 어떤 법적 근거가 있는 행위일까요? 이와 관련한 내용은 약사법 부칙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약사법 부칙 <법률 제8365호, 2007. 4. 11.>
제8조 (한의사ㆍ수의사의 조제에 관한 경과조치) 한의사가 자신이 치료용으로 사용하는 한약 및 한약제제를 자신이 직접 조제하거나 수의사가 자신이 치료용으로 사용하는 동물용 의약품을 자신이 직접 조제하는 경우에는 제23조제1항 및 제2항의 개정규정에도 불구하고 이를 조제할 수 있다.

즉, 한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고 처방하는 과정에서 교부하는 의약품을 한의사가 직접 조제하는 것은 약사법이 그 근거가 되는 행위인 것입니다.

'조제'와 '제조'는 다르다

약사법에서 '제조'의 정의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은데, 사전적 의미에서의 제조(製造)는 '공장에서 큰 규모로 물건을 만듦.' 그리고 '원료에 인공을 가하여 정교한 제품을 만듦.' 두 가지 의미입니다. 이같은 사전적 의미로 법리 해석을 다루는 것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대법원에서는 의약품의 ‘제조’를 '널리 일반적인 수요에 응하기 위하여 의약품을 산출하는 행위'로 해석하였습니다.

왜 '조제'와 '제조'의 차이가 중요할까요? '제조'의 경우 사전적 의미를 참고해도, 법원의 해석을 참고해도 보다 많은 수요를 전제하여 이루어지는 행위이기 때문에 훨씬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의약품 제조를 위한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제조'를 업을 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의 벌칙에 처해질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보건범죄단속법에 의해 가중처벌이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약사법 제5장 의약품등의 제조 및 수입 등 - 제1절 의약품등의 제조업
제31조(제조업 허가 등) ① 의약품 제조를 업(業)으로 하려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기준에 따라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총리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약사법 제9장 벌칙
제93조(벌칙) ①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4. 제31조제1항부터 제4항까지 또는 제9항을 위반하여 허가를 받거나 신고를 하지 아니한 자 또는 변경허가를 받거나 변경신고를 하지 아니한 자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약칭: 보건범죄단속법)
제3조(부정의약품 제조 등의 처벌)
「약사법」 제31조제1항의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의약품을 제조한 사람, 그 정황을 알고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취득한 사람 및 판매를 알선한 사람 또는 진료 목적으로 구입한 사람, 「약사법」 제62조제2호를 위반하여 주된 성분의 효능을 전혀 다른 성분의 효능으로 대체하거나 허가된 함량보다 현저히 부족하게 제조한 사람, 그 정황을 알고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취득한 사람 및 판매를 알선한 사람 또는 진료 목적으로 구입한 사람, 이미 허가된 의약품과 유사하게 위조하거나 변조한 사람, 그 정황을 알고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취득한 사람 및 판매를 알선한 사람 또는 진료 목적으로 구입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피고 A는 한약사 면허를 빌려 속칭 '면허 대여' 한약국을 개설하였고, 이미 한약국을 운영 중인 한약사들을 포섭하여 영업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명 '다이어트 한약'의 16가지 한약재를 탕전할 때 물로 희석하는 정도에 따라 약의 단계를 1~3단계로 구분하여두고, 제조 방법을 미리 정해둔 것입니다. 그리고 텔레마케터를 고용해 다이어트 한약을 홍보하였으며 구매 의사가 있는 고객에게 한약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 건강 상태 및 생활 습관 등을 파악하고 판매할 한약의 단계를 정한 후, 해당 약을 택배로 배송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2007년 4월부터 2017년 6월까지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계속되었고, 총 매출은 60억이 넘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피고 A는 법정에서 다이어트 한약을 만들어서 판매한 행위는 다이어트 한약을 '조제'한 것에 불과하고, '제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만일 피고 A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벌칙이 적용될 것이나, 검사 측은 이같은 행위가 한약의 '제조'에 해당하므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및 보건범죄단속법에 의거한 가중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조제와 제조 사이에서, 재판부의 판단

1심 재판부는 "한약사가 고객과 상담하기 전에 미리 다이어트 한약을 만들어둔 뒤 한약사가 고객과 상담을 마치면 미리 만들어둔 다이어트 한약을 고객에게 택배로 발송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고, 이러한 행위는 널리 일반적인 수요에 응하기 위하여 의약품을 산출하는 '제조'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수 있다"며, 유죄를 인정하였습니다. 2심 재판부 역시 "피고인들은 일반인들의 수요에 응하기 위하여 … 다이어트 한약을 만들어 이를 판매한 것으로, 이와 같은 피고인들의 행위는 의약품의 조제가 아니라 의약품의 제조 및 판매행위에 해당한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고, 대법원도 2심 재판부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요약하자면 '조제'란 특정인의 특정된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약제를 만드는 것이며, '제조'란 일반적인 수요에 응하기 위하여 의약품을 산출하는 행위이고, 의약품의 제조는 조제보다 훨씬 까다로운 요건을 갖추어야만 가능합니다. 이는 단순히 환자의 진료 시점과 비교해 사전에 조제하여둔 경우를 제조로 본다는 의미는 아닌데, 이 또한 나중에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위 글은 법학 전공자가 제공하는 전문 지식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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