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은 임상 현장에서 언제나 생명을 마주하기에 여타 직업과 비교해 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 의식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법원 판결에서도 의료인이 가져야 할 윤리 의식이 자주 언급될 정도이고, 최근에는 의료 윤리와 관련한 교과목까지 개설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의과대학의 히포크라테스 선서(Hippocratic Oath)와 간호대학의 나이팅게일 선서(Nightingale Pledge)는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의료 윤리와 직업 의식에 대한 내용을 담은 선서이지요.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한의과대학에도 의료 윤리를 담은 '허준 선서'가 있습니다.
마주치는 과목마다 낯설게만 느껴지던 2년 간의 한의예과 과정을 무사히 수료한 후엔, 본과(한의학과)로의 진입을 알리고 선후배들의 축하가 이어지는 '본과진입식(통칭 '본진식')'이 이루어지는데, 대개 본진식의 한 순서로 '허준 선서' 낭독이 있습니다. 학년의 대표가 단상에 올라 선서문을 읽으면, 동기가 다함께 선서를 마음 속에 새기는 시간을 가집니다.
'허준 선서'는 다음의 여덟 가지 원칙으로 이루어집니다.
1. 나는 나의 한평생을 보람있게 살겠으며 한방 의료의 직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것을 하늘에 맹세하겠습니다.
2. 나는 타인에게 해가 되는 행위는 일절 하지 않겠습니다.
3. 나는 한의학의 학문 및 임상을 크게 향상시키기 위해 나의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4. 나는 나의 환자의 비밀을 굳게 지키겠습니다.
5. 나는 의사로서 인류를 위해 성실히 봉사하겠습니다.
6. 나는 나의 동료들과 선배 스승들과 상호 친밀히 협조하여 어상(於相)의 질서를 지키겠습니다.
7. 나는 환자의 몸을 내 몸과 같이 여겨 생명이 다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전력을 다하여 치료하겠습니다.
8. 나는 한의사로서의 긍지와 인격을 지니겠습니다.
교육과정 상 인체해부를 이미 진행 중이거나, 시작하는 시기에 맞물려 본과진입식이 진행되기 때문에 이 선서는 더욱 큰 의미를 가집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 직업에 대한 사명감을 고취시키고 학업에 대한 열의를 다지게 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졸업 후에도 가끔 생각날 때마다 구글에서 검색해 허준 선서를 읽어보곤 하는데, 읽을 때마다 문장의 느낌이 새롭게 와닿는 느낌이라서 더욱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오늘도, 열심히 공부해 임상 현장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하게 됩니다.
의료인은 아니지만, 의료 서비스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약학대학에서는 '디오스코리데스 선서'를 한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