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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이 보는 의료/판례로 보는 LAW-HANI

중환자실 낙상 사고, 의료진 과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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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상(落傷, Fall)은 의료기관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사고의 하나입니다. 장소를 기준으로 침상에서의 낙상이 가장 높은 비율로 발생하며, 그 외에 화장실이나 복도에서 발생하는 경우 또한 있습니다. 보행이 불편한 노령층에서 낙상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 경우 골절, 두부 외상 등의 이차적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낙상은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적신호 사건(sentinel event)으로,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기관 내에서는 낙상에 대한 상당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대법원은 의료인의 주의의무와 관련해 '의사가 진찰·치료 등의 의료행위를 할 때에는 사람의 생명·신체·건강을 관리하는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최선의 조치를 다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 때 의료행위의 수준은 '진료환경과 조건, 의료행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 규범적인 수준으로 파악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2002다45185 판결 등)

그렇다면 낙상 사고 관련, '규범적인 수준'에서 의료기관에서 취하여야 하는 조치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낙상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 실제 사례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대법원 2020. 11. 26. 선고 2020다244511 판결 [구상금]

환자 A는 2017년 12월 7일 급성담낭염(Acute Cholecystitis)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경피적 담도배액술 및 도관 삽입술을 시행받았으나 8일 혈압 저하, 고열, 패혈증이 발생해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1일 04:00 경, 중환자실 침대에서 떨어져 뇌 손상을 입는 낙상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간호기록지에 따르면 간호사는 03:25 경 환자 A가 ‘뒤척임 없이 안정적인 자세로 수면 중’인 상태를 확인하였고, 03:45 경 ‘PTGBD(Percutaneous Gall bladder Drain) 배액 중’이었는데, 04:00 경 ‘쿵하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침상 난간 안전벨트와 침대난간을 넘어와 환자 A의 엉덩이가 바닥에 닿음과 동시에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찧는 상황’을 즉시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의료기관의 환자 관리는

판결문을 통해 해당 의료기관에서 어떤 식으로 환자를 관리하였는지 세부적인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크게는 두 가지(① 이번 사건에 중점적으로 다뤄진 낙상 방지 관련 환자 관리 요소, ② 환자 상태 전반 관리 요소) 맥락에서 의료기관의 환자 관리를 살펴보겠습니다.

① 낙상 방지 관련 환자 관리 요소

  • 낙상위험도 평가도구 매뉴얼에 따라 환자 A를 낙상 고위험관리군 환자로 평가하였다.
  • 환자 A의 침상에 낙상사고 위험요인 표식을 부착하였다.
  • 침대 높이를 최대한 낮추고 침대 바퀴를 고정하였으며, 사이드레일을 올리고 침상 난간에 안전벨트를 설치하였다.
  • 환자 A에게 수 차례에 걸쳐 낙상 방지 주의사항을 알리는 등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② 환자 상태 전반 관리 요소

  • 1시간 간격으로 매 시각 45분에서 정각 사이에 환자상태를 확인하였다.
  • 2시간 간격으로 체위 변경과 기저귀 교환, 침대 매트리스 및 신체 손상 여부의 확인을 2~3인 1조로 실시하였다.
  • 이 사건 낙상사고 발생 당시에도 간호사 1명 당 환자 3명을 보살피고 있었다.

대법원의 판단

피고병원이 환자 A가 낙상을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취하였던 당시의 여러 조치들은 현재의 의료행위 수준에 비추어 그다지 부족함이 없었다고 볼 여지가 있을 뿐더러, 피고병원의 간호사가 중환자실에서 환자 A의 상태를 마지막으로 살핀 뒤 불과 약 15분 후에 이 사건 낙상사고가 발생한 것을 가지고 낙상 방지 조치가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여부를 피고병원 측이 충분히 살피지 아니하거나 소홀히 한 잘못이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법원은 위와 같이 병원 내에서 환자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낙상 사고에까지 병원의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습니다. 같은 낙상 사고가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병원 내의 환자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어있지 않았다면 법원의 판단 역시 달라졌을 거라 생각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같은 판단의 기저에는 또다른 법리적 해석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부분 역시 판결문에 명확히 판시되어 있습니다. 의료행위 자체가 충분히 규범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졌다면 결과론적인 판단만으로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로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의사의 의료행위 과정에 주의의무 위반이 있는지 여부나 그 주의의무 위반과 손해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밝혀내기가 매우 어려운 특수성이 있으므로 환자에게 발생한 나쁜 결과에 관하여 의료상의 과실 이외의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간접사실들을 증명함으로써 그와 같은 손해가 의료상의 과실에 기한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 경우에도 의사의 과실로 인한 결과 발생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정들을 가지고 막연하게 중한 결과에서 의사의 과실과 인과관계를 추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의사에게 무과실의 증명책임을 지우는 것까지 허용되지는 아니한다(대법원 2002다45185 판결 등).

 

이 사건 낙상사고 당시 환자 A가 어떠한 경과로 침대에서 떨어지게 된 것인지 자체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고, 의료기관 측에서 당시 낙상 방지를 위한 나름의 조치를 취하였다면, 그리고 침상 난간 안전벨트를 채운 상태에서도 환자가 스스로 침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었다면(간호사는 ‘침상 난간 안전벨트는 환자 어깨부터 무릎 정도까지 적용이 되는데, 완전히 단단한 재질이 아니라서 의식이 명료한 환자의 경우 손발이 자유롭고 충분히 의지만 있으면 위로든 아래로든 충분히 빠져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이 사건 낙상사고가 의료기관의 과실이라 볼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낙상 사고 대비 '안전예방매트'가 설치되지 않은 점?

환자 A 측에서는 의료기관에서 낙상 사고 방지를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안전예방매트를 설치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고, 이는 하급심에서 인정되어 해당 낙상 사고에 대한 의료기관의 과실을 인정하는 결론으로 이어진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낙상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안전예방매트를 설치하는 것이 과연 오늘날의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현가능하고 또 타당한 조치인지, 나아가 피고병원이 안전예방매트를 설치하지 아니한 것이 의료행위의 재량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는지를 규범적으로 평가하였어야 한다.'며 원심의 판결을 파기하였습니다.


현실적으로 항상 생명을 다루는 의료기관에서 행하는 모든 의료행위에 대해 긍정적인 결과만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판결에서 다룬 것처럼 각종 안전 사고 또한 현실적으로 100% 방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의료진은 언제나 모든 이의 완쾌와 안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고, 이러한 점이 반영된 판결로 보입니다. 만일 의료진이 환자 안전 관리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당연히도 판단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의료진이 노력하는만큼 어떤 사고도, 어떤 부작용도 없이 원만히 치료가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혹 그렇지 않더라도,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고있다는 사실만큼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위 글은 법학 전공자가 제공하는 전문 지식이 아닙니다.
전문적인 법률 지식은 변호사에게 의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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