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smussen SA, Lyerly AD, Jamieson DJ. Delaying Pregnancy during a Public Health Crisis - Examining Public Health Recommendations for Covid-19 and Beyond. N Engl J Med. 2020 Nov 26;383(22):2097-2099. doi: 10.1056/NEJMp2027940. Epub 2020 Sep 30. PMID: 32997931.
2020년을 관통하는 가장 큰 보건의료계 이슈는 역시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COVID-19)입니다. 코로나19는 발열·기침·권태감 등 경증에서부터 폐렴·호흡곤란 등 중증까지 다양한 호흡기감염증이 나타나는 호흡기 증후군으로, 현재 제1급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된 질환입니다. 지난 3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범유행전염병(Pandemic)을 선언할 정도로 강한 전염력 및 결코 낮지 않은 치사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감염병이 유행하게 되면 먼저 해당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이외에도 신경써야할 점이 많습니다. 많은 고민 중 하나는 바로 자녀 계획입니다.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면, 만에 하나 임신 기간 중 감염이 발생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또 감염 이후 치료를 위한 약제 사용에 있어 위험이 있는지, 그리고 백신이 개발되는 경우 임신 기간 중 또는 임신 이전에 접종이 가능한지 여부 등을 신중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HIV, Influenza A/H1N1, Zika 당시의 경험
HIV와 A형 인플루엔자 H1N1 타입, 지카(Zika) 바이러스는 모두 강한 전염력으로 인류를 괴롭혀온 바이러스입니다. HIV는 후천면역결핍 증후군(AIDS,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H1N1타입 A형 인플루엔자는 흔히 '신종 플루'로 알려져 있으며, 지카 바이러스는 그 자체로 이미 유명하지요.
HIV 초기, HIV 감염 여성의 1/4에서 주산기 감염이 발생하였으며, 산모와 자녀 모두에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대중적으로 임신을 회피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는 제기된 각종 윤리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보다 많은 정보가 수집될 때까지 임신 연기를 권장하였습니다. 반면 2009년 H1N1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임산부의 합병증 및 사망 위험이 높다는 데이터가 나오자 일부 임상의는 CDC로 하여금 임신 연기를 권고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CDC는 감염 예방을 위한 생활 수칙 및 조기 치료의 중요성, 백신 접종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에 집중하는 선을 유지하였고, 2016년 지카 발병 당시에도 태아에 대한 상당한 위험이 알려졌으나 CDC는 지카 바이러스의 전염원인 이집트숲 모기(Aegis aegypti)를 피할 것과 성(性) 접촉에 유의할 것을 권고하는 선에서 대처하였습니다.
의학적인 위험과 의료 윤리
사실 CDC가 임신 지연을 권고한 것에 대해서도, 권고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많은 비판이 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코로나19 사태에서 CDC는 다시금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입니다. 코로나19와 임산부 및 신생아에 대한 데이터는 제한적이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에 감염된 임산부의 중환자실(ICU) 입원 비율이 1.5배 높으며, 기계적 인공호흡(Mechanical Ventilation)이 필요한 경우는 1.7배 높다고 합니다. 코로나19의 자궁 내 전파(Intrauterine transmission)나 신생아의 선천적 결함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조산 및 신생아 입원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는 점은 알아두어야 합니다.
의학적으로 밝혀진 위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공중 보건 기관은 임신 연기와 관련한 티칭에 있어 의료 윤리를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의 안전 및 자기결정권과 의학적인 위험을 저울질하고, 이를 명확히 전달하여야 하는 상황입니다. 공중 보건 기관 차원에서 임신을 연기하도록 권고하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응급 상황과 관련한 임신 관련 위험이 충분히 이해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규모 방사선 유출과 같은 상황에서는 임신 연기를 권고하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 임신 관련한 위험이 여타 의학적 상태 내지는 노출보다 명백히 치명적인 경우 임신 연기를 권고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임신 전 당뇨가 있는 경우 선천성 기형의 위험이 2~4배 높을 뿐 아니라 유산·미숙아·거대아 등의 위험과도 관련되어있고, 임산부의 급성 심근경색, 신장병증 등의 위험 또한 높아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뇨병이 있는 많은 여성이 임신을 선택한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 임신을 연기하거나 회피하는 것 외에 합리적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임신 연기를 권고할 수 있습니다. 2009년 H1N1 대유행 기간에 조기 치료 및 감염 예방이라는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 임신을 회피하고자 한다면 효과적인 피임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그 바탕으로 공중 보건 응급 상황에서 임신의 위험과 관련된 이익(Benefit) 및 위험(Risk)을 임산부가 잘 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의 합리적인 선택
코로나19와 관련된 작금의 상황에서 공중 보건 기관이 임신을 연기하거나 회피하도록 권고하는 것은 위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감염을 회피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이미 존재하고, 많은 정보가 대중적으로 전파되는 상황에서 공중보건 기관이 섣불리 임신을 제한하거나 연기 내지는 회피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오히려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결론이 코로나19와 임신이 의학적으로 아무 상관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자녀 계획과 관련하여서는 임산부와 주치의가 신중히 의논할 필요가 있고, 코로나19 이외의 다른 요소들 또한 입체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고 감염을 예방하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면 막연한 두려움만으로 자녀 계획을 미뤄둘 이유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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