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의료행위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다양한 유형의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非의료인의 의료행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알아보았고, 헷갈릴 수 있는 ‘유사 의료행위’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만약 의사가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에게 전화로 연락해 처방전의 내용을 지시하며 대리 교부할 것을 지시한다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할까요? 언뜻 보아서 참 애매모호합니다. 이럴 때는 역시 실제 사례를 참고하는 편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2013년 2월 14일,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을 운영하는 의사 A는 부재중에 원외에서 환자와 직접 통화한 후 간호조무사에게 연락해 처방 내용을 전달하고, 그 내용대로 처방전을 작성하여 환자에게 교부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이후 진료실에 복귀하면 누락된 원외처방내역 등을 진료기록부에 기재하였습니다. 이와 관련이 있는 아래 의료법 제17조, 제27조의 해석이 쟁점이었습니다.
제17조(진단서 등) ①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檢案)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아니면 진단서ㆍ검안서ㆍ증명서를 작성하여 환자 또는 「형사소송법」 제222조제1항에 따라 검시(檢屍)를 하는 지방검찰청검사에게 교부하지 못한다.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①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후략) <개정 2008. 2. 29., 2009. 1. 30., 2010. 1. 18.>
⑤ 의료인, 의료기관 개설자 및 종사자는 무자격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하거나 의료인에게 면허 사항 외의 의료행위를 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신설 2019. 4. 23.>
1심·2심의 판단
대전지방법원에서 진행된 1심에서는 의사 A의 행위를 위법하다고 보았습니다. 사실 이번 사건에 대한 재판이 처음은 아니었던 것이, 이미 같은 건에 대해 청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이 치러진 결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차이점은, 청주지방법원은 해당 의료기관(○○○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 대해 업무정지 60일에 갈음한 과징금 2,625만 원을 부과하였다는 것이고 대전지방법원은 의료인(의사 A)에 대한 자격정지 처분을 두고 다툰다는 점입니다.
- 청주지방법원(2016고정870)에서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을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함에도, 원고는 2013. 2. 14.경 간호조무사로 하여금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내원한 환자 3명에게 처방전을 교부하도록 하였다’는 의료법위반의 범죄사실로 선고유예 판결을 선고받았고 위 판결이 2016. 12. 10. 확정되었다.
- 동일한 사실관계에 관하여 이미 확정된 형사판결이 인정한 사실은 유력한 증거자료가 되므로, 행정재판에서 제출된 다른 증거들에 비추어 위 형사재판의 사실판단을 채용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와 배치되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대법원 1999. 11. 26. 선고 98두10424 판결 등 참조).
- 의사 A가 간호조무사에게 처방전의 내용을 지시한 것은 맞으나, ‘전에 처방받은 내용과 동일하게 처방하라’는 것일 뿐, 원고가 환자별로 처방할 약의 종류와 양을 특정하는 등 세부적인 지시를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당시 의사 A가 부재중이어서 실시할 수 없었던 개인정신치료(지지요법)까지 처방내역에 입력됨). 또한, 진료기록을 살펴보자면 접수에서 진료시간까지 소요된 시간이 수 초에 불과하다(의사 A가 의원에 있을 때 실제로 진료를 하였던 환자들의 경우 최소 5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됨).
- 행정관청이 현지 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조사의 상대방으로부터 구체적인 위반 사실에 대하여 이를 자인하는 내용의 확인서를 작성 받았다면, 그 확인서가 작성자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작성되었거나 그 내용의 미비 등 때문에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증명 자료로 삼기 어렵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확인서의 증거가치는 쉽게 부인할 수 없다(대법원 2002. 12. 6. 선고 2001두2560 판결 등 참조).
한편, '의료행위'의 개념과 '처방전' 제도의 취지에 대해 법원은 다음의 판결문 내용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의료행위’라 함은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진찰, 검안, 처방, 투약 또는 외과적 시술을 시행하여 하는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행위 및 그 밖에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리고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는 추상적 위험으로도 충분하므로, 구체적으로 환자에게 위험이 발생하지 아니하였다고 해서 보건위생상의 위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8. 6. 19. 선고 2017도19422 판결 등 참조).
구 의료법 제17조 제1항 본문은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을 작성하여 환자에게 교부하거나 발송(전자처방전에 한한다)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환자를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 등을 발행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은 처방전 등은 의사가 진단한 결과에 관한 판단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사람의 건강상태를 증명하고 민·형사책임을 판단하는 증거가 되는 등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그 정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직접 진찰한 의사만이 이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대법원 1996. 6. 28. 선고 96도1013 판결 등 참조).
3심 판단: 파기환송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설령 간호조무사가 처방전의 내용을 입력하고 교부하였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실질적으로 의사 A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면, 함부로 위법하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 이 사건에서 처방전을 교부받은 환자들은 종전에 의사 A로부터 진찰을 받고 처방전을 발급받았던 환자이므로, 의사 A가 간호조무사에게 3명의 환자들에 대하여 ‘전에 처방받은 내용과 동일하게 처방하라’고 지시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처방전 기재내용은 특정되었고, 그 처방전의 내용은 간호조무사가 아니라 의사 A가 결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 설령 의사 A가 3명의 환자들과 직접 통화하여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채 간호조무사에게 처방전 작성·교부를 지시하였다고 하더라도,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 등을 작성하여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구 의료법 제17조 제1항 위반이 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간호조무사가 처방전의 내용을 결정하였다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 의사가 처방전의 내용을 결정하여 작성·교부를 지시한 이상, 그러한 의사의 지시에 따라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환자에게 처방전을 작성·교부하는 행위가 구 의료법 제27조 제1항이 금지하는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사실 맞는 얘기입니다. 실제 의료 현장을 생각해보면, 대개 의료인이 환자를 직접 진찰한 후 처방전을 낼 때 진료실에서 '인쇄'버튼까지 누른다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안내 데스크에서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가 인쇄된 처방전에 의료기관의 서명이 담긴 도장을 찍어 환자에게 교부하게 됩니다. 이러한 통상적인 과정에서 의사가 간호조무사에게 처방전의 내용을 전달하고, 기계적인 입력을 맡겼다고 보면 딱히 그릇된 판단이라고 볼 수 없거든요.
이번 건에서 의사 A가 환자를 직접 진찰했는지 여부를 차치하고 처방전이 교부되는 프로세스만을 놓고 보았을 때, 엄밀히 보면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한, 대법원은 전화 진찰에 대해서도 보다 엄밀하게 판단 기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구 의료법 제17조 제1항 본문은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아니면 진단서·검안서·증명서 또는 처방전을 작성하여 환자에게 교부하거나 발송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이는 진단서·검안서·증명서 또는 처방전이 의사 등이 환자를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결과를 바탕으로 의료인으로서의 판단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사람의 건강상태 등을 증명하고 민형사책임을 판단하는 증거가 되는 등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그 정확성과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직접 진찰·검안한 의사 등만이 이를 작성·교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
- 따라서 의사 등이 직접 진찰하여야 할 환자를 진찰하지 않은 채 그 환자를 대상자로 표시하여 진단서·검안서·증명서 또는 처방전을 작성·교부하였다면 구 의료법 제17조 제1항 위반에 해당한다(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4도12608 판결 등 참조).
- 다만 위 조항은 스스로 진찰을 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일 뿐 대면진찰을 하지 않았거나 충분한 진찰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 일반을 금지하는 조항은 아니므로, 전화 진찰을 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자신이 진찰’하거나 ‘직접 진찰’을 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0도1388 판결 참조).
대법원의 판결 요지는 결국 하나로 귀결됩니다.
의사가 처방전의 내용을 결정하여 작성·교부를 지시한 이상, 그러한 의사의 지시에 따라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환자에게 처방전을 작성·교부하는 행위가 구 의료법 제27조 제1항이 금지하는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계속해서 헷갈릴 수 있는데요, 이번 판결에서는 두 가지 법 조항을 두고 심리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료법 제17조(진단서 등)과 의료법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1심과 2심에서는 의료법 제27조를 쟁점으로 하고 있으나, 결국 행정 처분이 의료법 제17조에 의거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법리적인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의사 A가 전화로 지시하여 간호조무사로 하여금 원외처방전을 발행하게 한 행위가 의료법이 금지하는 ‘의료인이 아닌 자로 하여금 의료행위를 하게 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대한민국의 사법 제도가 3심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판결로 보입니다. 1심과 2심은 사실심과 법률심을, 3심은 법률심을 중점적으로 검토하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 쉽게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도 판사의 수많은 검토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판례라 볼 수 있겠습니다.
위 글은 법학 전공자가 제공하는 전문 지식이 아닙니다.
전문적인 법률 지식은 변호사에게 의뢰하시기 바랍니다.